누구랑 살면 장수할 가능성이 높아질까?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다. 따라서 누구랑 사느냐에 따라 수명도 달라진다. 좀 오래 전 연구자료이긴 하지만 서울대 체력과학노화연구소가 간행한 《장수의 비밀》편에는 다양한 가족관계와 장수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표면적으로 아들 혹은 며느리와 함께 살아야 장수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서울대 아동가정학과 한경혜 교수팀은 49명의 백세인 가정을 조사했는데, 이중 3분의 2인 35명이 아들과 며느리 부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9명이 홀로 된 며느리와 살고 있었는데 그런 경우 모두 맏며느리였다고 한다. 즉 맏며느리가 모실 때 우리나라 노인의 장수 가능성은 높아진다는 말이 나올 만한 결과였다.



그러나 노화전문가들은 맏며느리가 모셔야만 장수한다는 장수의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화목한 가족관계가 장수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백세인 가족관계는 지방에 따라 특징이 달랐다. 유교적 전통 가치관이 강한 경상도나 전라도에서는 맏며느리와 함께 사는 백세인이 많았지만, 강원도 제주도에서는 특별히 아들과 며느리의 서열이 중요하지 않았다.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는 차남이 더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데도 꼭 장남하고만 사는 모습을 보였고, 남편과 사별한 맏며느리가 홀로 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와 사는 경우도 많았다면, 강원도나 제주도에서는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똑같이 모시는 경우가 많아, 장남이 부모를 모시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렇다면 장남과 맏며느리가 모셔야 장수 가능성이 높아지는 걸까? 농촌생활연구소 이정화 연구원에 따르면 며느리가 모셔야 오래 산다는 인과 관계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가족 관계가 원만한 백세인일수록 우울증 등 신경정신질환에 걸리지 않고 생활 만족도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가정의 화목함과 가족 간의 질서가 잘 잡힌 평화로운 가정이 장수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에만 해도 장남과 맏며느리와 함께 사는 백세인들의 비중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높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맏며느리와 함께 사는 백세인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사회적 경제적 원인과 심리적 원인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사회 경제적 원인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전통적 가족관으로 볼 때 장남이 부모를 모시는 가정이 가장 일반적이고 문제가 적었던 가정일 가능성이 높고, 그만큼 안정적인 가정 경제를 이루어 ‘화목한’ 가정일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교적 풍습과 전통적 가치를 삶의 가치로 받아들여 노인과 부모를 공경하는 자손을 둘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심리적으로도 백세인들에게 정신적 안정을 주었을 것이다. 노년은 경제적으로 생산능력이 퇴화하고 소비가 많은 세대이고, 질병의 가능성도 높아 자식과 주변에게 민폐를 끼치기 쉽다. 




그런데 가정에 부모와 조상을 공경하는 유교적 문화와 가치관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 백세인들이 자녀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당당하게 가정의 상징적 가장으로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 가정에는 문제점이 있다. 바로 ‘맏며느리 증후군’이라 불리는 며느리의 심적 부담이다. 전통적 가치관이 강한 사회에서 맏며느리는 노인을 모시는 과중한 부담을 고스란히 홀로 감당해야 했다. 백세인들의 삶은 당당하고 편했을지 몰라도 노인 수발을 전적으로 담당해야 했던 맏며느리들의 삶의 질은 심각할 정도로 저하되었다. 


그러나 핵가족이 보편화된 도시 가정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장수의 비밀》은 2003년에 간행되어 벌써 15년이 지난 자료인데 이 때 벌써 “지금 백세인을 모시는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상전’이란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한 마지막 세대”란 말이 등장한다.


이전에 며느리들은 시집살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자신이 고생한 것을 뒷 세대에게서 받을 수 있는 세대였다. 즉 며느리로서 고생한 만큼 자신의 며느리를 자유롭게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마지막  세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고된 시집살이와 며느리살이를 하고도 자신의 노후를 마땅히 의탁할 아들이나 며느리가 없는 세대가 되었다.  


예전에는 맏며느리의 전적인 희생으로 가정의 화목이 유지되고, 백세인들의 당당한 삶이 보장되던 사회였다면, 앞으로는 그렇게 희생하려는 며느리도 없고, 또 누구 한 명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다. 그리고 백세인이 누구의 일방적 희생으로 장수를 하는 것이라면 이것 역시 바람직한 일이라 볼 수도 없을 것이다.


또한 이제는 가정의 모습도 다양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 자식 며느리 손녀 손자가 함께 사는 대가족 가정의 모습은 TV 연속극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정겨운 추억일뿐 사회는 나홀로 사는 1인 가정과 2~3인 가족이 주가 되는 핵가족화된 사회가 되었다.  


즉 앞으로 건강하게 장수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는 화목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누가 모시고 누구와 살 것인가는 부차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인 장수과학자인 서울대 의대 박상철 교수의 말은 촌철살인의 핵심을 담고 있다.


“핵가족화가 보편화된 지금도 그렇고, 또한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는 오히려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걸지 않고 기대하는 않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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