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치유학, 소설 ‘마지막 잎새’의 잎사귀 효과는 사실일까?

여러분들은 O.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를 기억하는가? 소설에 등장하는 시한부 질병에 걸린 여류 화가는 정말 나무 잎새 때문에 병이 나은 것일까? 아니면 잎새 그림이 주는 정신적 승리감과 희망 때문에 병에서 회복된 것은 아닐까? 그도 아니면 이런 얘기는 극적 효과를 강조하는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허구적 산물은 아닐까? 



O. 헨리의 1905년작, ‘마지막 잎새’는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이라 안 읽어본 사람은 없겠지만, 그 내용을 잊어버린 분들이 계실 것 같아 책 내용을 짧게 정리해 본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년전, 화가 지망생이었던 절친 수(Sue)와 존시(johnsy)는 가난한 예술가 마을인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의 좁은 아파트에 살게 된다. 그런데 몸이 약했던 존시는 당시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독한 폐렴에 걸리게 된다. 


지금이야 폐렴은 크게 위험한 질병은 아니지만, 당시 폐렴은 가난한 화가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시한부 질병이었다. 존시는 병으로 몸이 약해질수록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자신도 곧 죽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말을 하여 수를 괴롭게 했다. 


존시의 주치의 역시 이대로는 존시가 생존할 가망이 없다고 진단을 내렸다. 그러던 어느날 존시는 창밖 담장에 있는 담쟁이덩굴을 보며 그 잎새가 모두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고 말하여 수를 아프게 한다.



존시의 아랫집에 살던 원로 화가 베어먼(Behrman)은 알코올에 쩌든 술고래였다. 그는 40년 화가인생에 특별한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언제나 걸작을 그릴 거라 호언장담을 했지만 도통 그림을 그리지 않고 남을 비난하며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수로부터 존시가 담장에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면 죽게 될 거라고 말했다는 소리를 전해 듣고 “세상천지에 그런 바보같은 소리가 어디있냐”며 눈물을 흘리며 노발대발 화를 냈다. 그리고 수에게 존시를 잘 보살피라고 부탁을 한다.


그런데 그날 밤은 밤새 심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그 다음날 아침 담장에는 담쟁이덩굴잎이 마지막 한 장만 남았다. 그 다음날에도 심한 비바람이 몰아쳤다. 그런데 한 장 남은 잎은 여전히 담장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담장에 남아 있던 잎새를 본 존시는 드디어 삶의 희망을 찾게 되고 몸을 회복하게 된다.


사실 마지막 남은 잎은 원로화가 베어먼이 담장에 그려 넣은 그림이었다. 존시는 그 그림을 보고 기적적으로 회복되었지만, 비바람이 불던 밤 찬 비바람을 온전히 맞으며 어두운 담장에 밤새 마지막 잎새를 그려넣던 베어먼은 그날의 후유증으로 이틀 후 폐렴으로 죽고 만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수는 이 마지막 잎새가 생전에 베어먼이 언젠가 그릴 거라 호언장담한 그 걸작일거란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한 사람의 위대한 희생을 기억하게 하는 이 작품은 O. 헨리가 자주 쓰는 수사법인 반어적 역설을 잘 살린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위대함은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문학적 역할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작품에는 나무와 숲이 주는 의료적 가치와 식물과 동물이 함께 생존해 나가는 생태계의 질서가 담겨 있다. 과학소설로 불리워도 무방한 훌륭한 작품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화가 베어먼이 그린 마지막 잎새 이전에 아파트 창밖 너머의 이웃집 담장의 담쟁이덩굴 자체가 평소에 존시의 건강에 큰 효과를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밖에 자라는 나무와 꽃은 우리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 아니 생명력이 시들어 가는 환자에게 나무와 꽃은 실제 치유를 도와줄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진짜 나무와 꽃이 아닌 조화나 자연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그림들도 인간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나무가 보이는 병실, 소설 ‘마지막 잎새’가 사실인 이유

“당신의 병상을 밖이 보이는 창가에 위치시키라!”


자연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료 효과를 볼 수 있을까? 그렇다. 자연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치유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이는 미국의 환경생리학자 로저 울리히(Roger Ulrich) 박사이다. 



그는 1980년대 초 환경건축 분야에 큰 영향을 준  「창문 밖 전망이 수술환자 회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View through a Window May Influence Recovery from Surgery」는 논문을 발표했다.


로저 울리히는 한 펜실베이아 교외 병원에서 1972년부터 1981년 사이 담낭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기록을 연구했다. 담낭 수술을 받은 사람들의 절반은 창문 밖으로 나무들이 보이는 병실에서 지냈고, 다른 절반의 환자는 창문 밖으로 온통 벽돌밖에 보이지 않는 답답한 병실에서 지냈다.



그런데 이들 환자들의 치료와 회복 속도가 눈에 띄게 달랐다. 날마다 창문으로 계절마다 변화하는 자연풍경을 볼 수 있었던 환자들은 진통제를 요구하는 경우가 적었고, 회복 속도가 빨라 훨씬 빠른 퇴원을 보였다. 




반면 입원 중에 벽돌 면만 볼 수 있었던 환자들은 고통을 덜기 위해 자주 약물이 필요했고 입원 기간도 훨씬 길었다. 누워서 멀뚱멀뚱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은 입원기간 중 의기소침하고 침울한 정서 상태를 보였다.



로저 울리히는 자신이 10대 때 신장염으로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었다. 그런데 아플 때 그를 가장 위로하고 힘을 주었던 것은 창문 밖에 자라고 있는 커다란 소나무였다. 이러한 자신의 경험이 환자의 회복기간과 창 밖의 나무와의 영향력에 대해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로저 울리히는 스웨덴 병원에서 이어진 후속 연구에서 창 밖 자연풍경이 심장 수술 환자들의 치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연구를 지속했다. 결과적으로, 신장염 환자와 마찬가지로 심장병 환자 역시 자연 풍경을 바라보았을 때 통증이 감소되고 회복기간이 짧아졌다. 


창문이나 사진으로 녹색을 볼 수 있는 환자들은 약물 치료가 줄어들었고, 창문이 없는 병실에서 지내거나 창문으로도 꽉 막힌 담장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환자들의 치료 속도는 더뎠다. 




진짜 산과 숲이 아닌

자연을 담은 사진과 그림의 치유 효과?


그런데 로저 울리히의 연구에 의하면, 환자들은 자연풍경이 아닌 사진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시냇물 사진을 본 환자들은 분노심이 가라앉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찰스 몽고메리가 쓴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에는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룬다. 이 책을 보면 자연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환자들의 통증이 감소되고 학생들의 성적이 높아지는 신기한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창밖의 전경이 진짜 숲과 자연풍경이 아니라도 좋았다. 심장수술을 받고 나무들과 시냇물과 숲의 사진만을 본 환자들도 하루종일 추상미술을 본 환자보다 덜 긴장하였고 통증도가 낮아졌다.


치과 대기실 벽에 자연 풍경화를 걸어놓자 치과에 온 환자들이 다른 날 환자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고 한다. 


시험을 치루는 학생들 역시 창밖으로 자연 풍경을 볼 수 있는 교실에서 시험을 본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시험성적이 좋게 나왔다.



캘리포니아 산타로사(Santa Rosa) 시에 있는 소노마 카운티 교도소에서는 벽에 초원 풍경을 묘사하는 그림을 건 후 교도관들이 일과를 더 쉽게 기억하게 됐다고 한다. 


이상과 같은 사례들은 현대 기능주의적 건축물들의 한계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 주변의 건물들을 보자. 가장 삭막하고 을씨년스럽고 가장 비인간적인 사각형의 건축물의 전형이 무엇인가? 병원, 학교, 교도소 등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드는 사각형의 공간이다. 기능적 편리성만 우선하고 이용자들의 감성을 고려하지 않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들이 머무는 병원들과 인생에서 가장 예민한 사춘기 시절을 보내는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 인생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할 수감자들이 이렇게 인간의 감성이 아닌 기능성만 고려된 공간에서 결정적인 시기를 보내야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나무와 인간 건강과의 관련성

“나무가 죽으면 인간도 죽는다!”


O. 헨리의 단편 ‘마지막 잎새’을 보면 주인공 존시는 담장에 잎이 모두 떨어지면 자신도 죽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 말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다. 


물론, 존시 개인으로 보았을 때 그 말이 사실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존시를 전체 인간으로 대체하고, 담장의 담쟁이덩굴을 지구의 식물이라고 대체하여 존시의 말을 생각해 본다면 존시의 대사는 과학적 사실이 된다. 즉 지구의 모든 나무가 죽으면 인간도 살 수가 없다.


나무가 인간 건강과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누구나 느낌으로는 공감한다. 그러나 그것이 과학적 근거를 갖기 위해서는 통계적 수치에 의해 증명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서 있었던 호리비단벌레(emerald ash borer) 사건은 큰 의미를 갖는다.



원래 호리비단벌레는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그만 녹생 해충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 조그만 해충이 중국에서 포장용 나무 상자에 딸려 미국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청된다.


2002년 미국 중서부 나무에서 호리비단벌레가 발견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조그만 벌레가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올지 사람들은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호리비단벌레는 곧 미국 전역에 큰 피해를 가져오게 된다. 그 이유는 피해를 입어 죽은 나무들이 주로 벽난로 장작으로 벌목되어 미국 전역으로 운송되었기 때문이었다. 


호리비단벌레가 지나간 자리마다 숲이 우거진 지역이 벌거숭이가 되었다. 특히 물푸레나무의 피해가 심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가로수인 물푸레나무는 미국에만 70억 그루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공 공간의 25%나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호리비단벌레로 인해 미국 전역의 물푸레나무가 최근까지 1억 그루 이상 죽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건강에 전가되었다. 미국 산림청은 호리비단벌레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대한 심층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들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미국인의 2대 사망질환인 심혈관 질환과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더 높아졌다는 점을 발견했다.


1990년에서 2007년 사이 미국 15개 카운티에서 있었던 호리비단벌레와 사망률 관계 조사 연구 결과 심장 질환으로 15,080명, 호흡기 질환으로 6,113명이 사망했다.


그야말로 숲은 공공의료의 중요한 자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나무와 국민 행복과의 관련성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면 인간도 행복해진다”


나무가 육체적 건강에만 좋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오산이다. 나무는 심리적 안정과 정서적 충족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나무가 많으면 인간은 더 행복해진다. 영국 엑서터대학에서 시행한 녹지에 사는 사람들과 일반인들과의 정신질환 비교 연구에서 풍부한 녹지가 확보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분노심과 우울증에 덜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나무가 사람의 정서에 주는 영향은 매우 지속적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급여 인상과 결혼식날의 행복감보다 더 오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무는 질병의 발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런던에서는 나무의 밀도와 약 처방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를 시행했다. 나무가 우거진 거리에 사는 주민들과 나무 없는 도로변에 사는 주민들에 대한 비교연구였다. 연구 결과 나무가 우거진 거리에 사는 주민들은 나무가 없거나 도로변에 사는 주민들보다 약을 처방받는 빈도가 훨씬 적었다고 한다. 



전 세계 삼림 면적의 9%를 차지하고 있는 캐나다는 미국과 오스트리아 연구자들과 함께 토론토에 모여 나무의 밀도와 건강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를 실시했다.   


그 결과가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매우 수량적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 의하면 도시 한 구획에 열 그루의 나무를 더 심는 것은 주민들에게 1만 달러 연봉 인상의 경제적 가치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 행위는 7년 더 젊어지는 것만큼 국민 건강에 긍정적 효과를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도시 한 블록에 열한 그루의 나무를 심으면 2만 달러 연봉 인상이나 14년 더 젊어지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고혈압, 당뇨, 비만 같은 심혈관계 질병률을 낮추는 작용을 했다고 한다.



사실, 도시의 구획과 블록의 크기는 도시마다 다르고, 심는 나무 종류 역시 다르며, 국민들마다 많이 걸리는 질병과 치료비 명목으로 들어가는 국가적 자원도 다르기 때문에 이 결과를 모든 나라에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나무의 경제적 가치를 인간의 질병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계산한 이 방식은 기존의 나무의 가치를 재는 여러 가지 척도 중에서 나무와 숲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흥미로운 연구 결과인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경우는 식물의 가치를 재는 척도가 매우 단순했다. 주로 미세먼지 영역에서 가로수가 탄소와 미세먼지를 얼마나 흡수하느냐에 따라 그 경제적 가치를 환산하곤 했었다.


그러나 나무와 숲의 가치는 다양하게 측정되어야 한다. 오늘 살펴본 내용만으로도 나무와 숲이 가진 국민 건강과의 관련성, 그리고 우울증과 정신질환과의 관련성,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와의 관련성, 재소자들의 재활의지와의 관련성, 중증질환자들의 수명연장과 수술후 통증 감소와 회복성과의 관련성, 국민들의 인생 만족도와 삶의 행복도와의 관련성 등 나무와 숲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식물과 동물이 함께 서로 도와주며 생존하도록 생태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배제한 인공적인 도시를 만들어냈다. 대한민국 주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파트는 동물과 식물들이 가장 살기 어려운 비자연적인 공간이다. 




모든 국민들이 핸드폰을 너도나도 쓰기 시작하면서 전자파에 방향감각을 상실한 꿀벌들이 도시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꿀벌들에 의해 수정 번식해 가던 식물들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하는 4차산업 시대에는 더 심한 도시화와 기계화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러한 시대에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것을 걱정하듯이 자연 역시 소외되지 않도록 나무와 숲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멸종의 위기 가운데 있는 동식물들의 보호를 위해 더욱 힘썼으면 좋겠다. 


마치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원로 화가 베어먼이 추운 가을날 밤 폭풍우 속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마지막 잎새를 담장에 그려넣었듯이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한 그루 나무를 심고 숲을 살려나간다면 죽어가던 존시가 새로운 생명을 얻었듯이 오늘날 황량한 도시에도 생명의 바람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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