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유전적 열매인가, 후천적 결과인가?

왜 인간은 늙을 수밖에 없을까? 일찍이 중원을 통일한 진시황제와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 부처가 고민했던 이 화두를 현 노화연구자들이 계승하여 연구하고 있다. 인간의 궁극적 질문인 죽음과 노화의 발생 원인을 찾는 과학적 탐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노화의 원인을 찾아 해결할 수 있다면 인간은 그만큼 영원히 늙지 않는 불로장생의 꿈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노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노화 연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만큼 노화에 대한 원인 가설도 다양하다. 하나하나 열거하면 1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하지만 노화를 대하는 과학자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노화의 원인을 생물체의 유전자에서 찾는 유전 프로그램 학설과, 노화의 원인을 여러 가지 후천적 환경에서 찾는 후천적 요인설이다.


유전 프로그램 학설이란, 쉽게 말해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고, 쥐는 3~4년을 살고, 코끼리는 70년을 살고, 인간이 100세까지 사는 것이 다 우리 유전자에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학설이다. 이것은 단지 생물들 종들 사이에만 유전자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종 안의 인간들 개인들도 자신의 유전자 속에 얼마까지 살지 수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생명체의 탄생→성장→성숙→노쇠→사망 하는 일련의 과정은 이미 유전적으로 프로그램화 되어 있어 인간이 어떻게 손을 써 볼 여지가 없다는 이론이다.  

     

얼핏 대부분 동물들이 자신들 종의 평균 수명의 테두리 안에서 살다 죽는 것을 보면 이 이론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대략 30년 전까지만 해도 노화가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이 시각은 노화연구자 대다수가 믿고 있던 신념이었다.


따라서 학자들은 노화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가 각각의 생명체 노화 유전자 때문이라고 보고 수명을 결정하는 노화 유전자를 찾는 것을 학문적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생물체의 수명을 결정하는 유전자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하등동물에서는 발견되었지만 인간을 포함한 고등동물에게서는 이런 노화 결정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1998년 미국의 맥아더 재단(MacArthur Faoundation)은 10년간의 연구 끝에 기존의 학설을 180도 뒤집는 결과를 내놓는다. 인간이 늙는 것에는 유전적 요소가 30%만 영향을 주고, 70%는 후천적 요소, 즉 생활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론이었다.


 


노화는 부모탓도 조상탓도 아니다

당신의 노화에는 전적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맥아더 재단의 연구는 종래의 단발적 연구들과 차원이 달랐다. 스웨덴에 등록된 일란성 쌍둥이 5만 명의 기록을 분석한 체계적인 연구 결과였다. 이 방대한 데이터가 담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무병장수라는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도 일부 영향을 주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삶의 환경을 어떻게 관리했느냐에 달려있다.” 



이 말은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40세 이후의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링컨의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살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건강과 주변 환경을 잘 관리해왔느냐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 것이다. 


노화에 미치는 환경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다른 연구들도 잇따라 발표되었다. 2004년 미국과학학술원 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는 스페인의 일란성 쌍둥이 80명의 염색체를 조사한 결과가 실렸다. 스페인국립암센터의 마리오 프라가 박사 연구팀이 3~74세 일란성 쌍둥이 40쌍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서 각각 3살 때 거의 같은 모습을 보였던 쌍둥이 염색체들은 50세 때 다시 조사했을 때는 서로 간에 엄청나게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있었다. 47년이란 긴 세월의 서로 다른 환경이 애초의 동일한 염색체의 모습을 이질적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스페인 일란성 쌍둥이 염색체에 대한 충격적 연구 결과는 환경이 인간의 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보여주어 이후 후생 유전학(에피제네틱스)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노화 후천적 요인설


‘노화가 유전자에 달려있다’는 기존 노화 프로그램설은 여러 모로 사람들에게 좌절과 절망을 안겨주는 이론이었다. 


생각해 보라. 노화 프로그램설에서는 자신의 수명이 전적으로 부모의 수명에 달려있다. 운이 나쁘게도 자신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면 그 당사자는 자신도 부모처럼 단명할 것이라 생각하고 살아가면서 늘 불안 속에 떨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 역시 가까운 분 중에 그런 분들이 계셨다. 한 분은 자신의 가문이 고혈압으로 남자들이 50세를 넘기기 어려운 집안이라 소개하면서, 할아버지는 물론 아버지 큰아버지, 삼촌 모두 50세를 전후하여 돌아가셨다면서 자신도 이미 고혈압을 앓고 있기에 오십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전에 말하곤 했다.


이 말이 마치 자신의 운명의 걸쇠로 작용했던 것일까? 50세를 갓 넘긴 그분은 고혈압과 당뇨, 간경화 합병증으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분이 일찍 돌아가신은 것은 평소 즐기셨던 술, 담배, 잦은 회식과 휴식 없는 과로 때문이었다. 평상시 그를 아낀 지인들이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니고 가족들을 생각해서 건강관리를 해야하지 않겠냐며 술 담배를 끊고 휴식과 절제가 있는 삶을 살라고 충고했지만, 그 때 마다 그분께선 어차피 열심히 자제하고 관리해봤자 오십이라면서 자기 몸 관리하는 것을 등한시 하셨다가 그런 결과를 맞고 만 것이다.


사실, 맥아더 재단의 연구와 스페인 쌍둥이 염색체 연구 결과를 놓고 본다면, 필자의 지인이 일찌감치 가문에서 내려오는 잘못된 수명에 대한 선입감을 버리고 자신의 건강관리를 젊은 시절부터 철저하게 시작했다면 50대 단명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맞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수명은 부모나 조상탓이 아니다.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았다고 해도 자신이 스스로의 삶에 책임감을 갖고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해나간다면 건강한 장수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화 관리, 자신의 인생에 대한 관심과 책임


그렇다면 노화를 대하는 우리 자세는 어떠해야할까?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노화 프로그램 학설을 믿는 학자들이 주장하듯 노화가 유전적 조건으로 결정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늙어가는 우리 몸에 대해 특별히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화가 우리의 환경과 우리의 행위의 결과라면 우리 개인 스스로는 우리의 환경이 보다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청정한 환경이 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고, 우리들의 일상생활 역시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는 삶의 선택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의 작은 선택이 중요하다. 장수는 올바른 삶의 작은 실천 행위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우리가 배가 고플 때 어떤 먹거리를 선택하는지, 우리가 목이 마를 때 어떤 음료를 마실지, 그리고 여가 시간에 어떤 취미생활을 선택할 것인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떤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 그러한 일상의 자잘한 선택의 결과가 장수라는 최종 열매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