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의 비참한 최후.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을 바라보며


한국 현대사는 서구 사회에 비해 짧은 민주주의 제도와 대통령제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초대 이승만 대통령에서부터 18대 박근혜 대통령까지 11명의 대통령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대부분 짧은 재임기간에도 불구하고 파란만장한 영욕의 삶을 보여주었고 대부분 그 마지막 뒷모습은 비참한 결과로 끝을 맺었다.

 

상해 임시정부의 최초의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건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1~3)은 헌정 역사를 시작한 건국의 아버지라는 큰 업적에 비해 그 집권 말기에는 자유당 독제 체제를 강화하며 종신 집권을 도모했다.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결국 4.19혁명에 의해 하야하였고 하와이로 망령을 하여 외국으로 쫓겨난 대통령이라는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었다



4.19 혁명 이후 의원내각제를 실시하고 장면 내각과 함께 상징적 국가원수였던 4대 윤보선 대통령 역시 짧은 집권 시기를 비극적으로 마감했다. 4.19 혁명으로 봇물처럼 터진 당시 민주화 열기와 정국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채 결국 박정희 군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정권을 이양하였다.

 

지금도 새마을운동과 한강의 기적을 이룬 민족부흥의 역사적 영도자혹은 친일파에서 공산주의자, 또 반공주의자로 역사전개에 따라 정치적 색깔을 바꿔가며 영구 집권을 위해 민중을 탄압한 파렴치한 독재자라는 그 역사적 평가에 있어 보수와 진보세력들에게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5~9)5.16 군사정변을 주도하며 대통령직에 선출되었다.

 

그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달성하며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국가였던 대한민국을 가장 짧은 시간에 선진국에 준하는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킨 한국의 경제적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집권 말기에 유신헌법을 공포하며 한국의 민주화 세력들을 탄압했으며 독자적인 핵개발을 시도하다가 1979년 오른팔인 중앙정보국장 김재규에 의해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정당에 몸담지 않고 직업공무원으로서 최초로 대통령직에 오른 인물은 최규하 대통령(10)이다. 그는 유신 정권 당시 총재로 있다가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대통령직에 올라 매우 짧은 재임기간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에 의해 축출되어 마지막까지 자신의 집에 칩거하며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은거생활을 하다 2006년 사망하였다.

 

그는 생전에 10개월간의 대통령 재임기간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였는데 전두환, 이순자 부부는 그의 회고록에서 신군부 쿠데타로 집권했을 때 최규하 대통령을 겁박한 사실이 없으며 오히려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에게 후임 대통령이 되어줄 것을 권유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정황상 그러한 그들의 주장은 신빙성을 갖기 어렵다.

 

박정희 대통령의 피살 이후 혼란한 정국을 틈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세운 전두환(11~12)과 노태우(13) 대통령의 삶 역시 그 끝이 비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광주사태를 과잉진압하고 체제 안정을 도모한 전두환, 노태우는 정경유착과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였고 대통령직 수행 이후 장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자신들의 민정당과 김영삼의 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3당을 통합해 거대 민자당을 만들고, 김영삼에게 정권을 물려주었다. 그러나 차기 집권한 문민정부에 의해 보호막이 사라지자 백담사로 도피하여 일신상의 안전을 도모하다가 결국 내란죄와 뇌물죄로 사형언도를 받고 구속 수감되어 있다가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되었다.

 

 

국민들의 민주화 염원을 배신한 3당 통합 이후 집권당 총수로서 대통령직에 당선된 김영삼 대통령(14) 역시 그 끝은 비참했다. 이전 군부세력과 차별된 직접 선거로 선출된 정통성 있는 문민정부라는 자부심을 갖고 시작된 김영삼 정부는 결국 집권 말기에 비선실세였던 아들 김현철의 광범위한 국정개입과 비자금 조성 문제 등으로 곤욕을 치뤘고, 당시 시급했던 경제 구조조정을 등한시 하고 내부 경쟁력 강화를 도외시 한 채 무리하게 해외개방과 세계화를 추진하여 결국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최대의 오점인 IMF 신탁통치라는 비극을 초래한 장본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역사 앞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상징 인물이었던 김대중 대통령(15)의 말로 역시 평탄치는 못했다. 사실상 김대중 대통령의 삶 자체가 언제나 파란만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대항마로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서 사지를 오갔고,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직에 당선된 후 집권 초기부터 IMF의 무리한 요구사항에 응해야 했다. 집권시기에 여러 개혁적 정책과제를 당시 보수정당의 방해로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나 그 말기에는 3아들의 비리문제와 측근 가신들의 비자금 문제,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불법적 북한 원조로 돈 주고 노벨상을 샀다는 오명을 썼다. 특히 최근에는 김정은 정권의 핵도발로 김대중 대통령의 최대 업적으로 추앙받았던 햇볕정책과 노벨평화상이 빛을 잃고 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비운의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16대 노무현 대통령일 것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한국의 오바마라고 대변되기도 하지만 재임기와 그 이후의 삶은 퇴임 이후에도 여전히 존경받고 있는 미국의 오바마와는 달리 비극적이었다. 재임 중 보수층과 언론의 집중적인 견제와 비난을 받았고, 의회 주도의 탄핵의 위기를 겨우 모면했으며, 퇴임 이후 봉화마을로 내려가 평화로운 인생의 말년을 희망했지만 차기 정권의 표적수사로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고향땅 평소 즐겨 찾던 뒷산에서 투신 서거하였다.

 

 

17대 이명박 대통령의 미래는 미지수이다. 작은 정주영으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현장에 있었던 이명박은 말단 회사원에서 최연소 사장, 국회의원,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고속도로와 같은 승진과 신분 상승을 한 대한민국 경제의 살아있는 성공신화이다. 정권 초기에 영어몰입교육과 광우병 파동으로 성난 민심에 의해 대규모 저항에 직면했지만 상대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집권 초기였고, 집권 시기에는 BBK비리와 친형 이상득 의원의 구속 사태로 곤경을 겪었고, 집권 후기에는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으로 일부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재임 이후의 삶은 비교적 평온한 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19대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그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이미 그의 보호막이 되어줄 여당 후보들은 대통령직 예상 후보자군에서 탈락하였다. 차기 당선이 유력시 되는 인물들은 이명박 전대통령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만 않다. 19대 대통령이 당선되면 과연 어떠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18대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에 대한 국민적 소감은 단순하지 않다. 당선시부터 독재자의 딸로서 고 박정희 대통령의 후광과 TK 지역세력의 지원과 5공 세력의 부활이라는 민주주의 후퇴를 가져온 장본인이라는 주장과 별개로,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닌 양육과 복지를 우선하는 민생 우선 여성정치인이라는 신선한 이슈를 가지고 대통령직에 당선된 박근혜는 집권초기부터 증세 없는 복지라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정부였다.

 

결국 최경환의 부동산 경기 부양에 의지한 근시안적 처방으로 경제적 양극화와 가계부채와 국가부채만을 키웠으며, 아베정권과 정신대 소녀상에 대한 비밀협상 등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정치적 실수를 연발했다. 가장 큰 실수는 국가적 재난사태에 준하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실망적인 대응방식이었다. 세월호 문제는 박근혜 정권의 정치적 무능과 위기 대응 능력의 수준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고 이로 인해 국민들의 실망감은 결국 최순실 사태를 명분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가져오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감옥에 갇히게 되자, 바닷속에 갇혀 있던 세월호는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필자는 마트와 공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부모들의 하나 밖에 없는 자식들이 수학여행 중에 전원 수몰되는 가장 참담한 사건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미온적이고 무능한 대응방식이 결국 박근헤를 지지했던 서민들의 등을 돌리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역시나 천문학적인 돈을 쓰며 정치경제를 주물렀던 강남 귀부인인 최순실을 국정 운영의 유일한 파트너로 택한 박근혜에 대한 실망감이 그녀를 탄핵으로 몰고 갔다. 그 이전 재래시장 골목을 찾아다니며 서민들과 포옹하고 악수하던 그 모습이 강남 VIP 전용 미용샵에서 불법약물주사를 맞으며 안티에이징에 국가 세금을 사용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크게 실망한 것이다.

 

 

소질과 적성 불문하고 공부 잘하면 무조건 서울대 법대를 가야한다는 권력 지향적 문화를 가진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자리이다.

 

그러나 견제 없는 권력은 결국 부패한다는 어느 위인의 명언처럼 독선적인 권력은 법적 한계를 벗어나 남용되다가 스스로 자멸하고 때로는 다음 정권에 의해 단호히 처벌된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한국의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실은 인간적으로 동정심을 품게 하며, 인생무상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필귀정으로 수렴하는 한국 정치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희망을 보게 한다. 한국의 정치에는 어느 정도 자정기능이 있고 민심에 의한 정의가 작동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기에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삼권분립제도가 제대로 작동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국민들은 광장에서 평화로운 시위로 자신의 뜻을 표출하고, 의회는 정당의 이해와 별도로 탄핵에 동의하고, 헌법재판소는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심의하여 공표한 입법부와 사법부의 정당한 절차에 의한 법에 기초한 정당한 절차에 따른 탄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대한민국의 민심은 문고리 3인방이나 비선실세가 판을 치는 비민주적인 정부를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해 준 사건이었다. 한국 대통령들의 비운의 삶들을 돌이켜 보면 오히려 한국의 정치는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한걸음씩 발전해 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조기각 영장심사 판사의 삼성전자 이재용 영장 청구 기각사건에서 보았듯이 아직 경제적 범죄자들에 대한 경제적인 정의는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는 대한민국이 정치적 정의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는 나라가 될 수 있도록 국민들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을 모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