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문센의 남극탐험 일화를 통해 본 정년 후 생존 원리

남극점 정복을 둘러싼 영국의 스코트와 노르웨이의 아문센 탐험대의 이야기는 지금도 생존 경쟁에 최고의 잠언서로 읽히는 일화이다.

 

1911년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스코트 경이 이끄는 탐험대가 당시 인류에게 마지막 남은 신대륙인 남극점 정복을 놓고 경주를 벌인다.

 

먼저 아문센은 현지화 전략을 위해 에스키모들의 여행법과 당시 남극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의 경험들을 철저히 분석하여 장비를 마련하고 남극 극점을 최단거리로 공략할 수 있는 루트를 연구했다. 실제 아문센은 에스키모들과 함께 먹고 자고 삶을 함께 하며 문명의 힘이 닿지 않은 얼음과 바다로 이뤄진 극지방의 강추위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익혔다.

 

그는 당시 산업과 과학 발달에 따라 탐험에 기계의 동력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최소한의 장비로 극지방을 정복하는 데는 에스키모 개와 썰매를 이용한 전통적 물자수송방법이 최선이라는 확신 아래 탐험대원을 선발할 때도 개 썰매 모는 전문가들과 스키어들을 모집했다.

 

아문센은 하루 6시간씩 15~20마일을 움직였고, 물자 수송은 주로 개 썰매에 의지했다. 아문센은 결코 무리하지 않았다. 극지방에서 땀이 나면 체온저하와 극도의 피로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에스키모들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극점에 가는 도중에 중간 베이스 캠프를 짜임새 있게 세우고 저장소를 만들고 비상물품들을 배치하여 실제 탐험대가 짊어지는 짐을 최소화 하여 가볍게 기동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아문센은 복장과 장비도 에스키모들이 이용하는 것들을 비롯하여 가볍고 튼튼한 것으로 마련했고, 아무리 사소한 것도 철저히 준비하고 점검했다.

 

 

1910년 6월 1일 스코트 탐험대는 데라 노바 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정박중에 아문센의 남극점 도전 소식을 듣고 남극 탐험에 강한 도전의지를 갖게 된다. 당시 세계 최강 국가였던 대영제국의 열렬한 후원 아래 영국인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결의로 스코트는 서둘러 뉴질랜드에 들러 만주산 조랑말 19마리, 개 34마리와 자동썰매 3대를 싣고 남극으로 출발한다.

 

1911년 1월 스코트 일행은 남극 로스 섬에 상륙하게 된다. 그런데 장비를 내릴 때부터 자동썰매 1대가 바다에 빠져 무용지물이 되었고, 이내 두 대도 고장나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남극의 강력한 눈보라에 만주산 조랑말들도 적응하지 못하고 동사해 버리고 말았다는 점이다. 결국은 대영제국의 후원 아래 모은 풍부한 물자와 지원품들을 사람이 직접 끌고 가야 했다.

 

아문센은 스코트 일행보다 앞서 남극점을 향한다. 이미 출발 때부터 아문센은 스코트 일행보다 유리했다. 아문센의 기지는 스코트 기지보다 남극점에 100킬로미터나 더 가까웠다. 아문센은 사전에 행해진 지리연구를 통해 남극점에 보다 가까운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할 수 있었다.

 

아문센 탐험대는 스코트 탐험대와는 달리 소수정예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코트 탐험대가 55명 규모라면 아문센 일행은 9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문센 일행과 썰매 끄는 개들은 훈련된 조직으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남극의 겨울 동안 치밀한 사전 답사와 남위 82도까지 저장소 설치를 마감했다. 그리고 저장소 주변에는 위치가 쉽게 파악될 수 있도록 곳곳에 깃발을 꽂게 했고, 썰매를 개량하여 경량화 했으며 바퀴를 달아 회전수에 따라 이동거리를 측정했다.

 

가는 곳곳마다 크레바스와 예기치 못한 위험이 도사렸지만 그때마다 아문센 일행들은 서로를 도와 가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크레바스에 사람이나 썰매 개가 빠지면 연결된 안전 자일을 잡아 당겨 서로를 구해냈으며,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가는 길목마다 곳곳에 많은 표식을 남겨 두었다. 남위 82도 이후부터는 1도 전진 때마다 식량저장고를 만들었고 돌아올 때 개는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사전에 계산 하고 일부를 잡아 식량으로 이용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2월 14일 관측기 바늘과 썰매의 거리계가 남위 90도를 가리키는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아문센이 스코트를 이긴 것이다.

 

 

한편 스코트는 남위 87도 위치에서 남극점을 정복할 대원 4명을 선발하고 나머지 대원을 돌려보낸다. 스코트 탐험대의 행로는 험준하고 고통스러웠다. 이미 썰매를 끌 자동썰매와 조랑말을 모두 잃어버렸고, 유일한 썰매 이동수단인 썰매 개는 잘 모는 사람이 없어 무용지물이라 개들 역시 다시 돌려보냈다.

 

사람이 썰매를 끌어야 했기 때문에 속도는 지체되었고 몸에 땀이 많이 나 땀이 식으면서 동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량도 빠르게 소모 되었다. 설상가상 눈보라도 심했다.

 

그러나 아문센 탐험대가 자신보다 먼저 출발했다는 점과 남극의 겨울이 닥치기 전에 빨리 남극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스코트 일행은 쉴 수가 없었다. 눈보라와 매서운 추위, 무거운 썰매를 끄느라 대원들은 탈진했고, 식량은 바닥을 드러냈다.

 

마침내 1월 18일 스코트 일행은 남극점에 도달하지만, 이미 그들 앞에는 노르웨이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자신들보다 5주나 먼저 아문센 일행이 남극점을 정복한 것이다.

 

스코트 탐험대의 낙담과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은 더욱 처참했다. 대원들은 동상과 피로에 시달렸고, 눈의 반사광에 실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썰매를 끌던 한 명이 동상으로 죽고, 다른 대원은 눈보라 속으로 사려져갔고, 스코트를 포함한 나머지 세 명은 제1저장소 앞 20킬로미터 지점에서 눈에 갇혀 꼼짝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연료와 식량이 모두 바닥이 나 1912년 3월말 경에 모두 숨을 거두고 만다.

 

 

아문센과 스코트로부터 배우는 생존 원리

 

1. 사전정보를 폭넓게 수집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찾아내라

 

아문센은 남극점 정복을 위해 광범위한 정보를 모으고 남극지방을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철저히 귀담아 들었다. 그러나 스코트 일행은 자신이 일전에 남극을 탐사했던 경험이 있었다고 생각하여 남극 지역 연구와 정보 수집을 등한시 했다.

 

스코트의 안일한 정보 수집은 남극에 조랑말과 자동썰매를 이용한 무모한 계획을 세우게 했다. 그리고 남극의 날씨에 대한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대원들이 눈보라에 갇혀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경우가 많았다.

 

정년 이후의 40년의 삶도 알고 보면 우리에게는 미지의 공간이다. 아문센과 스코트에게 남극이 미지의 탐구대상이었다면 우리에겐 정년 이후 40년이 탐구대상이다.

 

아문센 스코트 시대에도 이미 남극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정년 이후 40년의 삶에 대해 연구하고 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출판가에도 정년 이후의 삶을 대비하는 단행본 서적들이 적지 않게 발행되고 있고, 인터넷과 유튜브에도 저성장 저금리 뉴노멀 시대를 대비하는 자세에 대한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

 

아문센이 극지방의 삶을 먼저 경험했던 에스키모들의 삶을 통해 남극 정복을 위한 소중한 정보와 노하우를 배웠다면 우리나라 역시 우리보다 20년 먼저 고령화와 디플레이션을 경험한 이웃나라 일본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기나긴 경제 빙하기를 항해하기 위한 지도를 구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따라서 앞으로의 삶을 위한 배움에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특히 정년 이후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선배들과 일본의 사례들을 폭넓게 공부해야 한다.

 

2. 자신의 처지를 고수하지 말고, 현지에 맞는 삶의 방식에 적응하라.

 

아문센은 극지방에는 극지방만의 생존방식이 있다고 생각하고, 에스키모들과 함께 생활하며 극지방의 생존방식에 적응하였다. 썰매 끄는 개를 식량으로 이용하고 날 것을 먹는 것들은 당시 문명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야만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식량과 불을 구할 수 없는 극지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에 비해 스코트는 영국인의 삶과 문명의 생존 방식을 극지방에서도 고수하려 하였다. 조랑말과 자동썰매를 들여온 것은 극지방에는 맞지 않는 운송방식이었다.

 

노후 대비를 할 때 사람들은 현재의 삶의 규모와 형태를 정년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던 때와 은퇴 이후에는 모든 조건이 다르다.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극지방에는 극지방에 맞는 룰이 있는 것처럼 은퇴 이후의 삶은 이전 삶과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회사의 지원으로 골프를 치던 습관이 있었다면 이젠 돈이 들어가지 않는 등산이나 자전거 등으로 취미를 바꿔야 하고, 법인 카드로 일식집을 다녔다면 이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신선한 횟감을 사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사는 곳이 대형아파트라면 시골 전원주택이나 중소형 아파트로 이사하여 남는 돈을 연금자산으로 활용하고, 사업상 파트너십 관계로 만나던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이제는 이웃 사촌들이나 취미를 공유하는 동호회 회원들과의 인맥쌓기 등으로 새로운 인맥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

 

 

3. 가능한 몸을 가볍게 하고 삶을 단순화 하라.

 

아문센의 탐험대는 몸을 항상 가볍게 하고 단순함을 잃지 않았다. 그에 비해 스코트의 탐험대는 무겁고 복잡했다. 아문센은 총 팀원을 9명의 특수정예로 조직했다. 그리고 최후 남극점 탐사에는 4명만 데리고 남극점을 정복한다. 스코트는 55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큰 조직이었다.

 

여기서 스코트 탐험대가 55명이라는 것이 꼭 인원이 많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문센에게서 보듯이 최소의 인원으로 최단거리를 달려 가장 짧은 시간에 목표를 완수하는 스마트한 삶이 우리들의 정년 이후의 삶에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등산이나 탐험, 그리고 여행은 언제나 물자와 스피드의 갈등이 펼쳐진다. 물건과 장비를 많이 갖출수록 여행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할 수 있지만, 물건과 짐을 많이 짊어질수록 그 짐 자체 때문에 속도가 떨어져 등산이나 여행이 힘들어 지는 것이다. 물건을 많이 짊어지면 그게 일종의 택배 배달 형태이지 관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완전군장 매고 25킬로그램 캐리어 끌고 몽마르뜨 언덕을 올라가면 그것이 관광이 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폭풍우와 큰 시련이 왔을 때일수록 가벼워지면 생존 가능성이 높아 진다. 집에 불이 났다면 귀중품만 들고 밖으로 탈출해야지 이것저것 다 들고 나오려고 하다간 목숨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다. 바다에 폭풍우가 몰아치면 배가 생존하기 위해선 화물을 다 바다 속으로 버려야 한다. 아무리 아깝다고 하더라도 일단 가벼워야 생존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처럼 정년 이후 위기의 시기가 오면 자신을 가볍게 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아래에 다루겠지만 정년 이후에는 쓸데없는 체면과 허세, ‘모름지기 ~라면 마땅히 ~해야 한다.’ 는 부질없는 짐을 다 버려야 한다.

 

어찌보면 정년 이후의 삶은 이전의 삶을 얼마나 잘 버리느냐에 따라 생존확률과 적응능력이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

 

4. 체면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라.

 

아문센과 스코트의 남극 대결은 또한 명예를 중시하는 영국의 체면문화와 실리를 추구하는 바이킹 문화의 대결이기도 했다.

 

아문센은 남극점 정복이라는 목표 아래 불필요한 허세를 다 버리고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들만 활용했다. 필요하다면 아문센은 썰매를 끄는 개조차 식량으로 활용하였다. 이것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돌아올 때 짐을 줄이면서 식량 또한 확보하기 위하여 미리 치밀하게 계획된 결과였다.

 

사실상 탐험대의 규모나 대원들의 면면은 스코트 탐험대의 인적 베이스가 훨씬 뛰어났다. 스코트는 국가로부터 귀족 작위까지 하사 받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그리고 영국의 국가적 자존심과 애국심의 고취는 스코트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스코트는 식량 부족 속에서도 죽은 말과 개를 결코 식량 자원으로 활용하지 않았고,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대원들의 학술탐사를 지원했다.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도 영국군의 자존심을 걸고 무리한 행군을 강행하여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다. 물론 스코트의 행동은 명예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품위 있는 행동은 대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혹자는 우리나라 중년들이 딱 두 가지만 버리면 정년 이후를 무사히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첫째가 자식이고 둘째가 체면이다. 자식과 체면만 버리면 아무리 어려워도 살아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식과 체면은 우리나라 중년들이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다.

 

그대로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그 중에서 체면은 자식보다는 버리기 쉬울 것이다. 체면을 버린다는 것은 과거의 명함과 직함을 버리는 행동이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관행적인 허세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퇴직 직전의 직함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경향이 크다. 퇴직할 때 사장은 영원히 사장이고 부장은 영원히 부장이다. 그래서 더 낮은 직함을 주는 직장이나 직함이 없는 곳에는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동창회나 사교모임 역시 정년 이후 발길을 끊게 된다. 일할 때는 바빠서 못나갔었는데 은퇴 후에는 직함이 없어 수치스런 마음 때문에 모임을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록 새로운 기회와 길은 열리지 않는다. 행운은 결국 사람을 통해 오기 때문이다. 정년 이후 보다 만족스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체면을 버리고 보다 다양한 기회에 자신을 노출시킬 필요가 있다.

 

아문센이 식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썰매 개를 식량으로 이용했듯이 은퇴자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면 자신의 체면을 던져버려야 할 때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