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왜 여자보다 더 수명이 짧은 걸까?

2015년 출생자를 기준으로 하여 한국 남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79.0세이고, 여자는 85.2세로서 6.2세의 차이를 보였다. 이것은 매우 괄목할 만한 변화이다. 1980년 출생자를 기준으로 보면 남성의 기대수명이 61.9, 여성이 75.9세로서 8.4세의 차이가 났었다. 남녀의 수명 차이는 조금씩 간격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100세인 통계에서는 아직도 남녀의 수명 격차가 여전히 존재한다. 전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성철 소장의 연구에 따르면 선진국의 백세인 남녀비율이 1:4 혹은 1:5이며, 전세계적으로도 1:7 정도의 비율로 백세인에 있어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오래 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애초에 여자는 남자보다 오래 살게 되어 있는 장수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그러나 박성철 소장은 남녀의 수명을 결정함에 있어 유전적 차이는 매우 적다고 한다. 오히려 사회적인 남여 성역할의 차이와 개인적인 생활습관이 남녀의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것은 남녀의 성역할 차이가 큰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지역의 수명 차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탈리아의 사르데냐 지역은 백세인 남녀 비율이 1:1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10으로 전형적인 여성 장수국가의 형태를 띄고 있다. 여자가 오래 사는 것이 선진국은 물론 전세계적인 현상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만 유독 남성이 여성보다 100세까지 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리고 유럽에서는 매우 보수적인 지역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인데도 불구하고 유독 남녀 수명에 있어 차이가 없는 사르데냐 지역의 특징은 무엇일까?


 

전세계적으로 남녀 수명의 차이가 없는 지역은 이탈리아의 샤르데냐와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북쪽에 위치한 애미쉬 마을뿐이다. ‘할아버지 장수촌으로 유명한 애미쉬 마을은 19세기 초 스위스에서 이주해온 청교도들로 구성된 마을로, 지금도 마차를 타고 곡괭이질을 하고 농사를 짓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활동을 할 수 없고, 청교도적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유흥문화가 발달될 수 없는 지역이다. 이 지역은 돈 벌이 수단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 때문에 이곳 남성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밭에 나가 손수 농사를 짓는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섬 샤르데냐 지역은 일본의 오키나와와 함께 세계적인 장수마을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1999년 기준 202명의 백세인이 살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된 후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4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샤르데냐 전 지역이 백세인 기준 모두 남녀 수명의 차이가 적은 편이지만 이중 산간지역인 누오로 지역이 가장 남성 장수자가 많은 지역이다. 이곳은 남녀 백세인 기준이 1:1.1로 거의 남녀 수명이 같은 지역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남성의 평균수명(85)이 여성(80세 초반)보다 높은 곳이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들의 수명에 있어 산악 지방 사람들의 남성들이 수명이 높다고 한다. 산중에서는 남성들이 연령에 상관없이 더 많은 노동적 부담을 짊어질 수 밖에 없다. 사르데냐의 누오로 지역은 산악지역으로서 이곳의 남성 노인들은 나이가 들어도 매일 산에 올라 양을 돌보며 자연을 벗삼아 살아간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떠한가? 회사에서 퇴직한 후 남성들은 집안 소파를 기준 삼고 TV 모니터 앞에서 앉아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보내곤 한다. 아내나 며느리가 챙겨주는 밥만 먹고 일체 몸을 쓰지 않는 것이다. 주방 일이나 집안일은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집안 일 거들어 주는 일도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그에 비해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도 많은 노동량을 감당하고 있다. 여성들이 건강해서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질병을 갖고 있는 비율은 여성쪽이 남성보다 더 높다. 그러나 여성은 남성처럼 몸을 쉬게끔 내버려 두지 않는다. 식사 장만에서부터 청소와 빨래, 손자 손녀 간식 챙기기와 동네 친구들의 사교모임과 각종 취미 활동까지 정년 없는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집안일에는 정년도 퇴직도 없기 때문이다.

 

장수하려면 열심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세계적인 장수촌인 압하지야, 발카밤바, 오키나와, 사르데냐 지역 사람들은 공통점은 그들의 일상에서 규칙적인 노동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남성은 산에서 양이나 소를 돌보고, 여자들은 밭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과수원에서 과일을 키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많은 전문가들이 격렬한 운동은 젊은이들에게만 해당될 뿐, 활성산소 발생 때문에 50세가 넘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미국 랄프 파펜버거가 5만명이 넘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과 하버드 대학 졸업생들의 운동 습관을 40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실험 참가자의 사망률이 그들이 매주 연소시킨 칼로리 수치와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칼로리를 연소시킬수록 활성산소 발생이 증가될텐데도 불구하고 활동적으로 살수록 더 수명이 연장된다는 사실을 임상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랄프 파펜버거 박사는 1967년에 나온 자신의 1차 데이터에 큰 감동을 받고 45세라는 늦은 나이에 마라톤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80대에 이르기까지 150회가 넘는 정규 마라톤 코스와 울트라마라톤(정규 마라톤코스인 42.195Km를 훨씬 넘는 초장거리 육상 운동으로 때에 따라서는 250Km 이상을 달리는 경주) 코스를 완주하였다. 그리고도 80이 넘는 나이에 하버드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의대에서 강의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우리나라 백세인들 역시 다르지 않다. 나이가 들었다고 뒷짐 지고 안방에 앉아 하늘만 멀거니 바라보는 일은 백세인 사전엔 없는 일이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 골밀도도 낮아졌으니 집 밖 출입을 삼가고 눈도 나빠지고 운동기능이 떨어졌으니 운전대도 놓아야겠다는 식의 말은 백세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이다.

 

전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박성철 소장이 면접 연구를 행한 한국의 백세인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대화 내용들을 보면 백세인들의 생활철학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누워 있으면 뭐해, 몸만 더 아프지. 꿈지럭대고 움직여야 안 아퍼!”, “”우리나라 노인들 문제가 많아. 늙었다고 일하지 않고 빈둥대. 나이가 들어도 일해야지!“

 

말만 그렇게 말씀들 하시는 것이 아니다. 조사지였던 강원도 횡성에 살고 계신 백세인들의 부지런함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어떤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성공한 재력가라 그냥 일을 쉬어도 되는 상황이지만 직접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운다. 백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남는 시간에는 쉬지 않고 바구니와 삼태기를 만든다. 경북 예천에 살고 계신 98세 된 할머니는 옛 생각을 하기 싫어 낮잠도 안 잔다며 더운 한 낮에도 밭에서 작물을 가꾼다. 전남 구례에 살고 계시는 할아버지는 땔감이 필요하지 않는데도 산에 올라가 매일 등지게를 한 짐씩 짊어지고 내려오신다. 100세를 넘긴 할아버지가 왠만한 젊은이들도 들지 못하는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채 날마다 고된 노동을 즐기고 계셨다. 백세인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꼭 일을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모두 스스로 찾아서 일을 한다. 생각해 보라. 누가 100세 넘은 어르신에게 감히 일을 시킬 수 있겠는가?

 

혹자는 장수를 논하면서 왜 또 일타령이냐 하며 반론을 제기할 수 있도 있겠다. 평생 자식 뒷바라지를 하느라 밤낮 없이 휴가도 못가고 소처럼 일만 했는데 이젠 좀 쉬어야지 또 일하라고 그러느냐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 말은 정말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명목상 60세 정년이지만 실제 기업에서 퇴출되는 나이는 50대 초반이고, 연금제도의 미비로 생활비 마련을 위해 실제 노동하는 연령은 72세까지 해당이 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는 나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세가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저주도 될 수 있고 축복도 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삶에 자유와 휴식도 없이 노예처럼 일만하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노동은 저주이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일종의 삶의 특권이자 자신을 개발하며 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10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삶은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개인의 가치관 선택의 문제이다. 물론 백세인들은 후자에 속하는 그룹이다. 백세인들은 그 누구보다 노동을 축복으로 반기는 사고관을 갖고 있다. 백세인들의 장수를 이루게 하는 가치관은 건강한 노동관에 있음이 분명하다.

 

 

공자가 죽어야 남자가 장수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남성들이 100세 이상의 장수를 하기 위해 뛰어넘어야 할 전통적 관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남존여비의 성차별적 관습과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서열에 따라 일하는 자를 천시하는 유교적 잔재를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남성 노인들이 몸을 움직이지 않는 데에는 이런 유교적인 악습이 알게 모르게 우리의 잠재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먼저 집 안에서 아내의 일을 거들어 줄 수도 있음에도 가정 일에 전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남녀유별과 남존여비의 사고 때문이다. 솥뚜껑 운전수는 사내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며, 부엌일은 여자들의 일이고, 자식들이나 집안 대소사는 안방 마님이 하는 일이니 남자는 그냥 집에 앉아 TV 뉴스와 신문을 보며 국가가 움직이는 방향을 관조하며 산에 올라 인생무상과 천하를 관망하는 것을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이 의연 중에 잠재 되어 있다.

 

그리고 정년 이후 직업 전선에 나가지 못하고 창업이나 명예직에 매달리는 것은 실제 고령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몸을 많이 쓰고 고객을 접대해야 하는 서비스직임에 비해 한국 남성 고령층은 남성으로서 체면과 존경 받는 대장부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유교적인 전통사회가 아니다. 공자가 꿈 꿨던 사회는 하늘이 정해준 이치에 따라 인간의 관계가 결정되는 사회였다. 하늘이 정해준 남자와 여자는 남자가 여자보다 존귀했고(남존여비), 먼저 태어난 연장자는 나중에 태어난 후배들보다 모든 것에 앞서는 권위를 누렸다(장유유서). 그러나 이제는 남자나 연장자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중장년 남성들이 갖고 있는 남성적인 과묵함과 권위적인 태도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쌍방향 수평적 네트워크 사회에 맞지 않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미래 기술 혁신과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학습능력과 문화수용 능력의 부족을 뜻하기에 오히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훨씬 서툰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유교적 전통이 주는 혜택이나 이전의 사고관을 빨리 벗어던지고 이 시대에 맞는 소통하고 배우며 일하는 따뜻한 꽃중년 남성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 내면에 살고 있는 공자의 망령을 죽일 때 꼰대라고 일컬어지는 사회적 고립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보화 사회가 중장년층에게 주는 다양한 기회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지금 당장 집안일을 시작하자. 집안일도 제대로 하려면 배워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설거지부터 시작하자.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 처음 입사한 신입 조리원이 설거지와 청소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세프이자 지배인인 아내에게 집안일에 대해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우리 동네 최고의 셰프가 될 수 있도록 칼을 갈아 보자.

 

그리고 무슨 일이든 쉼 없이 움직이자. 백세인들은 움직이면 살고 멈추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늘 몸을 움직이며 일하고 있다. 인생은 현재진행형이기에 마침표 없는 인생을 살아가려면 보다 동사에 맞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들고 계획하고 정리하고 읽고 쓰고 발표하고 만나고 쓸고 닦고 조이고 조립하며 요리하고 설거지 하는 등등... 이렇게 하루 종일 끊임없이 움직이는 한 노화 없는 건강한 생활과 창조적인 자신감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