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최고의 직업은 평생현역이다
- 초고령사회생존법
- 2017. 6. 1. 09:00
퇴직 후 자리를 잡지 못한 분들 중에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훌륭한 능력과 경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새 일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퇴직자들이 대부분 회사를 나오게 되는 50대는 생애에서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50대 중반 퇴직해서 아직도 한창 대학에 다니는 막내를 뒷바라지 해주어야 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첫째에게는 아파트 전세자금이라도 도움을 주어야 하는 때이다.
그리고 부부가 40년 남은 삶을 유복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남에게 손 벌리지는 않을 만큼 살 수 있을 정도의 노후자금을 마련해 두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평균 수명의 차이에 의해 적어도 남편 사후 10년 이상을 홀로 생존해 가야할 아내를 생각하면 더 많은 노후 준비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저금리 기조에서 재테크보다 평생현역을 지향하라는 노후전문가들의 주장들이 일리가 있지만, 일을 하고 싶어도 마땅히 일자리가 없다.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못 구해 다시 노량진 고시촌에 들어가 공무원을 준비하는 나라에서 이제 흰 머리카락이 성성한 퇴직자가 서야 할 곳이 마땅히 예비 되어 있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사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근로자들처럼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는 사람들도 없다고 한다. 한 눈 팔지 않고 직장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일해 온 장년들이 아무런 대비 없이 단지 나이듦이라는 이유만으로 회사 밖으로 퇴출되는 것은 참으로 개인적으로 비극적인 일이며, 국가로도 큰 인력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참담한 경제적 현실이 성실한 대한민국 퇴직자 가장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생활비와 양육비는 꼬박꼬박 통장에서 지출되고 있다. 따져 보면 앞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간과 기회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기회를 그냥 버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진짜 은퇴의 시작은 자존심과 체면으로부터 은퇴
고령화 시대를 넘어 고령시대 진입의 목전에서 이 시대 최고의 경쟁력은 평생 일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평생 현역의 능력은 뛰어난 경험과 일처리 능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는 데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체면과 자존심이 재취업의 걸림돌로 작용이 되는 걸까? 그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자.
첫째, 재취업은 사회적 신분의 하락과 급여의 삭감을 의미한다. 평생 승진과 출세의 오르막길만을 달려온 퇴직자들이 급한 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달려야 하는 것은 사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은 더 많은 경험을 쌓았고 건강도 충분히 받쳐 주고, 퇴직 전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데, 사회에서는 퇴직 전과 후를 완전히 다르게 평가한다. 그런데 퇴직자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면을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퇴직자들은 퇴직 직전 수준의 직장을 찾아 구직활동을 벌이다가 1~2년을 그냥 보내는 경우가 많다.
둘째, 재취업 과정은 새로운 배움의 과정과 환경에 대한 적응을 요구하는데,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어렵고 바뀐 환경에서 새 일원으로 적응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직장 상사에게 꼬박 존칭을 써야 하고 가르침을 청해야 하며, 바뀐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자신의 과거를 버리고 습성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생전 모르는 사람들을 상사로 모시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신입으로 적응하는 것은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현역 시절의 인적 네트워크와 경력을 살려 취업한 직장은 아는 후배들도 많고, 기존에 거래하던 협력업체 지인들도 많다.
따라서 상하 위계질서가 강한 우리나라의 조직사회에서 평생 후배로만 생각해 왔던 새 직장의 선임자를 상사로 모시거나 갑의 입장에서 협력업체 직원들을 대하다가 입장이 180도 달라져 이젠 자신이 을의 위치에서 옛 협력업체 직원들을 대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버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퇴직은 가족들도 아프게 한다. 가족들을 위로하라
그런데 이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다. 모든 것을 각오하고 마지막 자존심까지 내던지더라도 재취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바로 가족 변수이다.
본인이 자신의 과거 타이틀과 경력을 다 버리고, 마지막 자존심도 헌납하고 눈을 낮춰 직장을 찾을 때 오히려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아내는 처가와 이웃 사람 보기에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퇴직한 사실을 처가와 이웃에 알리지 않고, 예전보다 몇 단계 못한 새 직장에 다니는 것을 반대한다. 딸도 자신이 결혼할 때까지 이전 직장의 직함을 유지해 달라며 새 직장에 다니는 것을 만류를 한다. 막내 아들은 상황이 아버지가 그런 직장에 다닐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느냐며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되면 새 직장에 다니는 것을 강행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족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리해서 재취업을 강행해선 안 된다. 앞으로 더 한층 서로 의지하며 40년을 동행해야 하는 아내와의 사이에 불화의 씨앗을 남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먼저 아내를 설득해야 한다. 곧장 취업전선에 뛰어들지 않으면 차후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취업공백이 길면 앞으로 더 취업을 하기가 어렵고 새 직장에 적응하는 것도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차분하게 설득해야 한다.
고령사회, 최고의 능력사원은 평생현역
그리고 현재 미국과 일본의 퇴직자들의 모습은 아내와 가족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과거 현역 시절처럼 메인이자 중심이 되어 일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비록 허드렛일이라도 프로 의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들이 선진국 은퇴자들의 모습이며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그런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소신 있게 말해 주어야 한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귀감이 될 만한 분이 있다. 교장선생님으로 정년 퇴직후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유명한 춘천 남이섬의 평생 정규직 환경미화원으로 고용된 신명호 할아버지는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 하는 14만평의 넓은 지역을 청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허드렛일로 시작하여 4개월만에 청소부로 승격 2년 연속 최우수 사원에 선정되는 등 관광지로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들의 가이드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일에는 원래 귀천이 있을 수 없지요. 더구나 100세 시대에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신명호 할아버지에게도 당혹하게 하는 분들이 계시다고 한다. 일의 고된 일과보다 예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눈길이 더 장애물이었다고 한다. 간혹 옛 동료 다른 교장선생님들로부터 왜 그런 일을 하느냐는 항의전화가 온다는 말이었다.
잘나가던 시절 명함을 버려야 평생현역의 길이 열린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속히 변해야 하는 문화가 있다. 한 사람을 호칭할 때 그 사람이 은퇴할 때 마지막 그 직함을 불러주는 문화 말이다. 사장으로 은퇴한 사람은 ‘김사장님, 이사장님’, 부장으로 은퇴한 사람은 ‘최부장님’ ‘고부장님’, 장관으로 은퇴한 사람은 ‘박장관님’
이런 식으로 과거 제일 잘 나가던 시절의 타이틀을 은퇴 후에도 불러주는 문화가 퇴직자들의 미래를 더 과거에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하는 듯 하다. 가족들 역시 그러한 직함을 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누가 김사장님의 부인 사모님이 되기 원하지 미화원 신씨의 부인 김 아무개 여사님이 되길 원하겠는가?
그런데 이 점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일 과거와 같이 평균 수명이 환갑이나 칠순 정도의 수명에 그치는 사회였다면 정년 이후 그러한 직함을 갖고 직업 없이 살다가 여생을 마감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년 이후 40년을 그런 실체는 없고 이름만 있는 김사장이나 신교장 선생님이라는 유명무실한 직함에 의지하여 직장도 구하지 않고 무직자로 살아가다가는 결국 기다리는 것은 노후파산과 절대 빈곤의 수렁뿐이라는 점을 기억하며 과거의 직함과 타이틀에 안주하려는 자신을 경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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